목차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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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에게 일을 맡기고 싶었다.
자료를 찾고, 기획을 정리하고, 설계와 구현을 이어가게 했다. 결과는 나왔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계속 바빴다.
방금 정한 것을 다시 설명해야 했다. 이전에 하지 않기로 한 일을 또 검토해야 했다. 끝났다는 말을 듣고 정말 끝났는지 확인하러 갔다.
AI가 일하는 동안 나는 그 일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처음에는 모델이 조금만 더 잘하면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했다. 목표를 잘 기억하고, 지시를 잘 따르고, 실수를 줄이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모든 결정과 확인을 들고 있는 방식도 함께 바뀌어야 했다.
1. 처음에는 실행을 붙잡으려 했다
긴 작업을 맡기면 처음 정한 목표와 결과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었다. 필요한 예외 처리를 놓치거나, 검사를 충분히 하지 않은 채 완료라고 설명하는 일도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목표와 계획을 대화 바깥에 남기고 싶었다. 다음 작업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읽을 수 있고, 무엇을 통과해야 끝나는지도 정해져 있었으면 했다.
MFH라는 이름으로 정리했던 것은 이런 문제의식이었다.
잘하라고 반복하는 대신, 해야 할 일과 확인할 방법을 붙여두는 것. 끝났다는 설명만 받는 대신 실제 결과를 볼 수 있게 하는 것.
이것만으로도 질문은 조금 구체적이 된다.
“왜 또 잊었어?” 대신 “어느 기록이 다음 작업에 전달되지 않았지?”라고 물을 수 있다.
2.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일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실행만 정리해도 일이 끝나지는 않았다.
어떤 자료를 믿어야 하는지, 이 선택은 전에 왜 하지 않았는지, 지금 사람에게 물어야 하는지. 이런 것을 매번 내가 판단하고 있었다.
나는 AI를 사용하면서도 혼자 일하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던 셈이다. 모든 맥락은 내가 알고 있고, AI는 그때그때 지시받은 일을 한다.
작업이 많아지면 내 기억과 시간부터 부족해진다.
그렇다고 중요한 결정까지 모두 넘기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아주 잘 실행하는 것도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게 필요한 것은 손을 완전히 놓는 일이 아니었다. 잡고 있어야 할 것을 구분하는 일이었다.
- 자료·기획·구현을 맡긴다
- AI가 작업하고 결과물을 만든다.
- 기억이 돌아온다
- 방금 정한 내용을 내가 다시 설명한다.다음 작업자가 읽을 목표와 기록이 필요했다.
- 선택이 돌아온다
- 이전에 하지 않기로 한 일을 내가 또 검토한다.결정한 이유가 내 머릿속에만 남아 있었다.
- 확인이 돌아온다
- 완료라는 말을 듣고 내가 실제로 끝났는지 찾아본다.통과할 조건과 실제 결과를 볼 수 있어야 했다.
3. 일을 배우면서 구분이 생겼다
경영과 관리, 기획과 전략, 개발과 기술을 접하면서 나는 일을 잘한다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다.
빨리 처리하는 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무엇을 풀어야 하는지 알아야 했고, 부족한 지식은 배워야 했다. 결정한 이유를 남기고, 결과를 보고 다음 방법을 바꿀 수도 있어야 했다.
그 과정을 AI가 함께 수행할 수 있게 만들면 어떨까?
내가 하나씩 말해야만 움직이는 도구가 아니라, 목표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찾고, 이미 배운 것을 다시 쓰고, 작업을 이어가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
나중에 ballast를 직접 회사 업무에 사용하며 이 방향을 더 구체적으로 다듬었다. 처음부터 여러 사람에게 팔기 위해 만든 체계는 아니었다. 우선 내가 덜 반복하고, 더 잘 판단하고 싶었다.
4. 내가 맡을 것과 넘길 것
개발의 세부 결정을 모두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에이전트가 자료를 조사하고, 설계를 비교하고, 구현하고, 검사하게 할 수 있다. 정해진 계산과 수집처럼 반복되는 일은 코드로 만들어 같은 과정을 안정적으로 수행하게 할 수도 있다.
그렇게 처리할 수 있는 일을 습관적으로 다시 나에게 묻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회사에서 어떤 문제를 먼저 풀지, 무엇을 고객에게 약속할지, 어떤 예산과 위험을 감수할지는 다른 문제다. 그 선택에는 내가 책임져야 할 맥락이 있다.
내가 최종 판단을 한다는 말도 모든 자료를 직접 모은다는 뜻은 아니다.
판단에 필요한 상태를 만들어달라는 뜻에 가깝다.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제안이며, 어떤 선택지가 있고, 아직 무엇을 모르는지 보이게 하는 것.
5. 완성된 하나의 제품으로 묶지는 않는다
초기에 Meta와 Orchestra OS라는 이름으로 기억과 역할 분리를 정리했다. MFH에서는 실행과 확인을 다뤘다.
이 기록들이 모두 하나의 완성된 시스템으로 통합됐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서로 다른 시기에 다른 문제를 다루며 만든 설계와 실험이다.
2026년 9월 현재 내가 집중하는 것은 ballast와 superapp이다.
ballast에서는 에이전트와 일하며 배운 것을 다음 작업으로 이어가려 한다. superapp에서는 내 업무와 회사의 자료, 지표를 연결해 제품과 마케팅, 운영에 대한 판단을 돕고 싶다.
둘 다 내가 직접 사용하며 고치고 있는 작업이다. 끝난 문제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줄이고 싶은 바쁨
나는 생각하는 일까지 없애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생각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고 싶다. 흩어진 자료를 찾아다니고, 같은 설명을 반복하고, 이미 정한 선택을 다시 확인하는 데 힘을 다 쓰지 않았으면 한다.
AI를 많이 사용한다고 그 상태가 저절로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무엇을 맡길 수 있는지 나눠야 했고, 일을 이어받을 기록이 필요했고, 중요한 결과를 확인할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이제는 결과물의 수만 보지 않으려 한다.
그 결과를 만들고 난 뒤, 내가 다음 판단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는지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