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웅

프로젝트읽기 3

서버를 열고 나서야 사람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Softopia를 운영하며 배운 것은 접속자 수만이 아니었다. 규칙을 만드는 일과 그 규칙을 사람이 받아들이게 하는 일의 차이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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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가 게임을 조금 더 편하게 배울 수 있는 서버를 만들고 싶었다.

Rust를 처음 시작한 사람에게는 익혀야 할 것이 많다. 여기에 오래 플레이한 사람과의 격차까지 겹치면, 재미를 느끼기 전에 지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직장인이나 학생처럼 오래 접속하기 어려운 사람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생각으로 운영한 서버가 Softopia였다.

내가 정한 좋은 환경

자원 배율과 제작 시간, 레이드 규칙을 조정했다. 새로 들어온 사람을 보호하고, 플레이 시간을 확인하고, 문제가 생기면 기록을 볼 수 있도록 도구를 붙였다.

PHAROS와 연결해 작업한 부분도 있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규칙을 잘 만들고, 필요한 기능을 넣으면 내가 원하는 환경에 가까워질 것이라고.

물론 도움이 됐다.

하지만 규칙이 존재하는 것과 모두가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은 달랐다.

같은 게임, 다른 기대
입문자용 뉴비서버와 숙련자용 Softopia를 비교해 고르도록 구성한 서버 선택 화면.
보관된 서버 선택 화면. 대상에 따라 규칙을 다르게 설명했던 흔적이며 현재 운영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보관 화면 · 서버 안내

1. 같은 규칙을 다르게 읽는 사람들

운영하다 보면 서로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된다.

누군가는 보호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다른 사람은 제한이 지나치다고 느낀다. 같은 상황에서도 누구는 정당한 플레이라고 하고, 누구는 규칙을 피한 행동이라고 본다.

그때마다 운영자인 내가 판단해야 했다.

어떤 규칙이 적용되는지,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당사자들이 무엇을 알고 행동했는지 확인해야 했다. 먼저 말한 사람의 설명만 듣고 결정해서는 안 됐다.

문제는 내가 결론을 내린 뒤에도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내가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 설명하지 않으면 상대에게는 다른 장면으로 남는다. 운영자는 충분히 확인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용자는 이유를 모른 채 불이익을 받았다고 느낄 수 있다.

나 혼자 정리한 판단은 아직 공유된 판단이 아니었다.

2. 모두를 만족시키려 하면 방향을 잃는다

건의를 받는 것은 필요했다. 하지만 모든 건의를 반영할 수는 없었다.

초보자가 배우기 쉬운 환경과 숙련자가 제약 없이 경쟁하는 환경은 같은 선택을 요구하지 않았다. 접속 시간이 긴 사람에게 좋은 방식이 짧은 사람에게도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누구를 위한 서버인지 계속 돌아봐야 했다.

한쪽의 불만을 잠재우려고 기준을 바꾸고, 다시 다른 쪽의 불만 때문에 되돌리면 규칙을 믿기 어려워진다.

사용자를 존중한다는 것이 모든 요청을 들어준다는 뜻은 아니었다. 어떤 방향을 선택했는지 말하고, 바꿀 부분과 유지할 부분을 구분하는 것도 필요했다.

3. 운영은 계속 남는 일이었다

분쟁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게임이 바뀌면 설정을 다시 살펴봐야 했고, 서버 상태를 확인하고, 오래 남은 데이터를 정리하고, 공지를 써야 했다.

기존 기록에는 디스코드 참여자 205명과 동시 접속 약 100명 규모가 남아 있다. 현재 이용자 수가 아니라 당시 운영을 설명하기 위한 기록이다.

숫자로 쓰면 한 줄이다.

하지만 그 한 줄 뒤에는 계속 확인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사람이 늘면 좋은 점도 커지지만, 운영자가 놓칠 수 있는 상황도 늘어난다.

자동화할 수 있는 부분을 만드는 이유도 여기에서 분명해졌다. 반복 확인에 쓰는 시간을 줄여야, 실제로 상황을 이해하고 판단해야 하는 곳에 시간을 쓸 수 있었다.

내가 배운 관계의 문제

처음에는 좋은 서버를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안에는 서로 다른 기대를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기능은 그 관계를 돕는 도구였지, 관계 전체를 대신하지는 못했다.

지금 회사 업무와 에이전트의 역할을 나누는 작업을 하면서도 이 경험을 떠올린다. 규칙만 적어두었다고 협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누가 무엇을 알고 있고, 어떤 판단을 맡았고, 무엇을 전달받지 못했는지 봐야 한다.

서버를 운영하며 사람을 다룰 줄 알게 됐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내가 규칙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사람들이 들어올 공간을 만드는 것과, 그 사람들이 계속 머물 수 있는 환경을 지키는 일은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