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을 배웠다. 친구한테. 그랬더니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불편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고, “이걸 고치면 되잖아"라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사전이해
투자를 하면서 동시에 “뭔가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계속 있었다. 돈을 버는 것과 뭔가를 만드는 것은 다른 종류의 만족이다. 투자는 맞추면 기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는다. 만든 것은 남는다.
근데 뭘 만들려면 시각화를 할 줄 알아야 한다. 머릿속에 있는 걸 다른 사람이 볼 수 있게 꺼내야 한다. 코드로 바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먼저 “보여줄 수 있는 형태"가 필요했다.
문제
아이디어는 많았다. 노트에 적어둔 서비스 아이디어만 수십 개. 하지만 전부 텍스트였다. “이런 기능이 있고, 이렇게 작동하고, 사용자는 이런 가치를 얻는다"를 아무리 글로 써봤자, 상대방은 감이 안 온다.
“보여줘” 하는데 보여줄 게 없다. 이게 문제였다.
핵심
친구가 UX/UI를 하고 있었다. Figma를 썼다. 어느 날 카페에서 그 친구가 작업하는 걸 옆에서 봤다. 화면 위에 버튼을 놓고, 색을 바꾸고, 텍스트를 배치하는 걸 보면서 “나도 이거 배우면 아이디어를 바로 시각화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배웠다. 정식 교육이 아니라, 친구한테 하나하나 물어보면서. “이거 어떻게 해?” “이 정렬은 뭐야?” “프로토타입은 어떻게 만들어?”
접근
디자인을 배우면서 가장 먼저 한 건 내 아이디어 중 하나를 시각화한 거였다. VisionPilot이라는 앱이었다. AI 기반 맞춤형 학습 앱. 사용자의 학습 패턴을 분석해서 최적의 학습 경로를 추천해주는 서비스.
텍스트로는 설명이 안 되던 게, 와이어프레임을 만들기 시작하니까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 온보딩 화면: 사용자가 관심 분야를 선택한다
- 대시보드: 오늘의 학습 추천이 카드 형태로 나온다
- 진행률: 주간 학습 현황이 그래프로 보인다
- 추천 알고리즘: 사용자가 어려워하는 부분을 감지해서 반복 학습을 제안한다
화면을 하나하나 만들면서, “이 기능이 왜 필요한지"도 더 명확해졌다. 글로 쓸 때는 몰랐던 허점이 시각화하면 보인다. “여기서 사용자가 이탈하겠는데?” “이 버튼은 너무 깊이 있어서 아무도 안 누르겠다.”
세부
디자인을 배우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건 눈이었다. 일상에서 불편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카페에서 키오스크를 쓸 때 — “이 메뉴 구조는 왜 이렇게 복잡하지? 2depth면 될 걸 4depth로 만들어놨네.”
지하철 앱을 쓸 때 — “환승 정보가 왜 이 화면에 없지? 사용자가 가장 필요한 순간에 가장 필요한 정보가 없잖아.”
이런 관찰이 쌓이면서, “좋은 세상을 편리하게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구체적인 서비스 아이디어로 바뀌었다. 불편함을 발견하면 “이걸 해결하는 서비스를 만들면 되잖아"라는 사고 회로가 생긴 거다.
기획서를 쓰고, 와이어프레임을 만들고, 프로토타입을 돌려보고.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배운 게 있다.
아이디어와 제품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머릿속에서는 완벽한데, 화면에 옮기면 허점투성이다. “이게 왜 안 되지?“가 반복된다. 사용자 흐름을 한 번 그려보면,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전혀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디자인은 이 거리를 줄이는 도구였다. 코드 없이도, 아이디어를 “만져볼 수 있는 형태"로 바꿔주는 도구.
영향
디자인을 배운 뒤로, 내 아이디어들이 서랍 속 텍스트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여줄 수 있게 되니까,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이런 거 만들면 어때?” 하면서 화면을 보여주면, 상대방의 반응이 즉각적이다. 텍스트로 설명할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리고 이 경험이 나중에 Alpha Court를 만들 때 직접적으로 쓰였다. 코드는 AI가 짜지만, “이 화면은 이래야 한다"는 감각은 내 것이다. 사용자가 어디서 헤매는지, 어떤 정보가 먼저 보여야 하는지, 어떤 버튼이 눈에 띄어야 하는지 — 이런 판단은 코드가 아니라 디자인 감각에서 나온다.
결과
디자인은 예쁘게 만드는 게 아니었다. 사람이 원하는 걸 찾는 과정이었다.
화면을 예쁘게 만드는 건 그 과정의 마지막 단계일 뿐이다. 진짜 중요한 건 그 전 — 사용자가 뭘 원하는지, 어떤 흐름으로 움직이는지, 어디서 막히는지를 이해하는 것.
친구한테 Figma를 배운 그 카페에서의 오후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내 사고방식의 시작이었다.
디자인을 배운 뒤로, 불편함이 보이면 “이걸 고치는 서비스를 만들면 되지"라고 생각한다. 그 습관이 아직도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