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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방엔 집중하고, 어떤 방엔 무너진다

고1까지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자 같은 사람이 다른 결과를 내고 있었다. 의지가 아니라 방이었다.
어떤 방엔 집중하고, 어떤 방엔 무너진다
같은 피실험체, 다른 실내 조건 — 3년간 나를 대상으로 한 몰입 실험 기록

고1까지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보안에 관심이 생겨 준비한 특성화고 입시는 실패였고, 그렇게 떠밀리듯 인문계에 들어간 뒤 주변을 보면 친구는 놀자는 애들뿐이었다. 하루의 대부분은 게임과 유튜브로 녹았다. 그런데 같은 해에, 나 같은 사람이 2,000만 원을 모았고, 3년 뒤 20살엔 첫 1억을 모았다. 처음엔 ‘지식을 돈으로 승화하겠다’는 원칙부터 세웠다. 이커머스를 하다 자동화가 필요해 파이썬을 배웠고, 그 공부를 복습 겸 대학생 대상 과제 대행으로 이어갔다. UX/UI를 배운 뒤엔 그 시각 감각을 과외로 연결했다. 혼자 제품을 만들 때쯤부턴 그게 내 사업이 됐다.

달라진 건 나 자신이 아니었다. 내가 들어가 있는 방이었다.

사전이해

이 글은 “몰입하는 법"이 아니다. 그런 글은 이미 너무 많다. 이건 3년 동안 나 자신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의 보고서다. 같은 몸, 같은 뇌, 같은 하루에서 무엇이 결과를 다르게 만들었는지 관찰한 기록이다.

문제

고1의 어느 날, 천장을 보며 나는 내가 왜 이 모양인지 계속 물었다. “난 왜 이럴까.” 답이 나오지 않았다. 당연했다. 질문이 쓰레기였다.

답이 나오지 않자, 정말 우울하고 무기력한 날이 이어지기만 했다. 그즈음 인터넷에서 한 문장을 봤다. 쓰레기 질문에는 쓰레기 답이 나온다. 문제의 본질을 찾으려면 What이 아니라 Why에 집중하라.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쓰레기 질문을 한 건가..?” 그제야 나는 질문을 바꾸기 시작했다.

핵심 — 실험 1. 꼬리 질문

나는 나 자신에게 질문을 연쇄로 던졌다.

난 왜 이럴까 → 아니 왜 이렇게 됐을까? → 공부가 부정적으로 느껴져서 → 왜 부정적일까 → 막연히 두렵고, 게임에 빠져서 소홀했으니까 → 게임은 왜 했을까 → 할 게 없어서 → 할 일을 주면 어떨까 → 그럼 난 뭘 원하지 → 경제적 자유 → 방법은 → 현금 흐름을 만드는 것 → 그래서 뭘 할까 → 내가 원하는 일은 무엇이지? → 프로그래밍부터 배우자

답은 바깥에서 오지 않았다. 질문의 깊이에서 나왔다. 이게 실험의 첫 관찰 결과였다.

접근 — 실험 2. 환경 재설계

방향이 잡힌 뒤 내가 가장 먼저 한 건 유튜브를 끊는 것이 아니라, 유튜브의 알고리즘을 바꾸는 것이었다.

구글 계정을 새로 만들었다. 기존 계정의 취향(게임, 영화, 코미디)은 새 계정에선 전부 “관심 없음"으로 눌렀다. 대신 주식 지식, 동기부여 영상, 뉴스, 거시 분석 인사이트 영상을 반복 재생했다. 한 달 뒤, 새 계정의 메인 화면은 다른 사람의 유튜브가 되어 있었다. 의지로 유튜브를 참는 대신, 유튜브가 나를 도와주는 환경을 만든 셈이다.

학교에서도 방을 바꿨다. 담배와 술이 익숙한 친구들과 거리를 두고 이과반으로 옮겼다. 거기엔 머리가 비상한 애들이 있었다. 그중 한 친구가 웹 프로그래밍을 나보다 훨씬 많이 알았고, 그 친구 덕분에 나는 UX/UI에 입문했다.

결국 나는 “의지로 참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참을 필요가 없는 방 안으로 몸을 옮겼을 뿐이다.

세부 — 실험 3. 20만 원과 30만 원

가장 뼈아프게 배운 실험은 식비였다. 1.5개월간 20만 원 생활 챌린지를 했다. 밥값을 줄이고 공부 시간을 늘리는 게 목표였다.

6일 만에 무너졌다. 집중력이 떨어졌고, 우울감이 왔고, 자존감이 내려갔다. 친구와 상담한 결론은 간단했다. “수면을 줄이고, 강박적으로 공부하고, 밥까지 안 먹는 건 자신을 노예로 두는 일이다.”

예산을 30만 원으로 올리고 식사의 질을 조금 높이자, 이전의 집중이 돌아왔다. 10만 원이 나를 돌려보냈다.

영향

세 실험을 지나고 난 뒤 내 결론은 이상할 정도로 단순했다.

몰입은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다. 방의 문제다.

좋은 질문이 나오는 방, 좋은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영상, 좋은 친구가 있는 반, 내 몸을 노예로 두지 않는 예산. 이 네 개가 맞물려 돌아가면 몰입은 애써 만드는 게 아니라 저절로 일어난다.

의지는 하루 만에 바닥난다. 방은 24시간 내 뒤에 서 있다. 그 차이가 3년 뒤의 나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꿨다.

결과

고1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사람이다. 같은 몸, 같은 뇌, 같은 하루 24시간. 바뀐 건 딱 하나 — 내가 들어가 있는 방이다.

누가 “몰입하는 법"을 물으면 나는 더 이상 의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답한다.

“네가 지금 어떤 방에 있는지부터 봐라.”

좋은 방 안에선 나쁜 선택이 어렵다. 나쁜 방 안에선 좋은 선택이 어렵다. 그게 3년짜리 실험의 결론이었다.


같은 피실험체가 어떤 방에선 집중하고 어떤 방에선 무너진다. 방을 바꿔라. 너는 그대로여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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