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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 때 시작한 이커머스를 6개월 만에 접었다

게임 코드·재화·계정을 해외에서 싸게 사 와 30~60% 마진을 남겼다. 6개월 만에 시장을 거의 장악했지만 나는 그 사업을 버렸다. 돈보다 크게 남은 건 '자동화'라는 단어였다.
고1 때 시작한 이커머스를 6개월 만에 접었다
해외 스토어와 국내 시장 사이의 가격 격차 — 고1 여름에 처음 발견한 차익거래 지도

고1 여름, 나는 Discord 음성채팅을 켜둔 채 숙제를 하고 있었다. 친구 하나가 말했다. “이거 어디서 좀 더 싸게 살 수 있을까.” 다른 친구가 받았다. “요즘 네이버에서 사면 싸다던데.” 나는 며칠 전 어머니 지인이셨던 무역회사 사장님이 해주신 말을 떠올렸다. “싼 나라에서 사서, 비싼 나라에 파는 것. 그게 무역이다.”

세 문장이 한 점에서 만났다. 그 저녁에 나는 해외 게임 스토어를 열어봤다.

사전이해

이 글은 “고등학생이 사업으로 돈 번 법"이 아니다. 6개월간 잘 굴러가던 사업을 왜 접었는지, 그리고 그 6개월이 돈 말고 무엇을 남겼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문제

Discord에서 게임을 많이 하는 친구들은 언제나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 게임 코드·재화·계정을 어떻게 더 싸게 살까.” 수요는 분명했는데, 아무도 공급 경로를 짜놓지 않은 시장이었다. 그 사장님이 해주신 말이 귓가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 공백이 유난히 선명하게 보였다.

핵심 — 차익거래의 발견

해외 스토어를 몇 개 비교해보니 동일한 아이템이 국내 시세의 4070% 수준에 팔리고 있었다.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내놓으면 **마진이 3060%** 남는 구간이었다. 처음엔 한두 건, 일주일 지나자 하루에 여러 건이 됐다. Discord 친구들이 먼저 반응했고, 소문은 그들의 게임 서버로, 또 다른 서버로 건너건너 퍼졌다.

접근 — “왜 내가 이걸 하고 있지?”

첫 달이 지나자 낯선 피로가 왔다. 결제 확인, 해외에서 물건 받기, 구매자에게 배송 정보 복사해 보내기, CS 대응, 환불 처리. 모든 단계를 내가 손으로 했다. 어느 순간 나는 물건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메시지를 복사 붙여넣기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자동화"라는 단어에 꽂혔다. 결론은 단순했다. 디스코드 챗봇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파이썬이 필요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print("hello world")를 쳤다.

세부 — API라는 세계

챗봇을 만드는 과정에서 API라는 개념을 처음 만났다. “내가 부르면, 저쪽이 응답한다.” 그 구조가 충격이었다. 세상의 거의 모든 서비스가 이걸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몇 주 뒤 내 사업은 거의 나 없이 돌아갔다. 결제만 직접 누르고, 배송 정보 전달과 CS는 전부 봇이 했다. 나는 사업자에서 도구 제작자로 한 발 옮겨가 있었다.

영향 — 6개월, 고정 수입, 그리고 현타

6개월쯤 지나자 시장을 거의 장악했다. 가격·배송 속도·대응 품질 세 축 모두에서 내가 앞섰고, 수익은 고정 수입이 됐다. 그 시점부터 이상하게도 현타가 왔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시장이 너무 작았다. 사람을 고용해 확장할 만큼 큰 풀이 아니었다. 둘째, 그렇다고 내가 계속 붙잡고 있자니 이 작은 성공이 나를 조금씩 가두는 느낌이 들었다. 안정적인 수입, 안정적인 운영, 안정적인 반복. 안정은 나를 안심시킬 줄만 알았지, 나를 자라게 해주진 않았다.

결과

나는 접었다. 잘 굴러가는 채로. 수익은 그 달로 사라졌지만, 6개월이 나에게 남긴 건 돈이 아니었다.

처음 파이썬을 쳐본 감각. 처음 API를 만난 놀라움. “자동화"라는 단어가 내 사전에 새겨진 경험. 이 셋이 이후 3년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그때 배운 가장 값진 문장은 이거였다.

작은 성공은 큰 성장을 대체할 수 없다. 잘 되는 걸 버리는 것도 기술이다.


그 사업을 접지 않았으면, 지금 만드는 제품들은 없었을 것이다. 가끔 잘 되는 걸 버리는 용기가 다음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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